에스더 아나톨리티스의 ‘윤리이자 실천으로서의 관계 맺기’
윤리이자 실천으로서의 관계 맺기
Engagement As An Ethic and A Practice
2019년 11월 20일
에스더 아나톨리티스
이 기사는 2019 ACUADS(호주 대학예술 & 디자인학교 협의회) 회의: 관계 맺기(Engagement)에서 에스더가 2019년 11월 1일(금) 호주의 멜버른에서 했던 기조연설에 대한 요악문이다. 호주 창작예술 학장 및 대표 협의회(ACDDCA)의 출판물인 NiTRO (비전통적 연구결과)에 2019년 11월 15일(금) 처음 발표되었다.
“호주연구위원회(ARC)의 참여와 영향력”의 뼈대는 바우하우스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이것이 올해 2019 ACUADS 회의: 관계 맺기(Engagement)의 틀을 이루는 질문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창의적 유산 안에서 사회적, 지적, 정치적 참여를 맥락화하는 생산적 방법을 제공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복합적인 21세기의 문제에 대한 디자인 주도적 해결책을 국제적으로 참여하는 간학제적 팀과 함께 작업했던 20년 전 바우하우스에서의 제 형성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디자인의 대상이 아닌 실천과 방법론에 대한 평가하는 제 최근의 회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윤리이자 실천으로서 참여를 이야기하면서, 미래의 예술가, 디자이너, 시민이 바로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했습니다.
중추적 시기
지금은 호주의 역사에서 중추적 시기입니다. 사회적 응집력, 환경과 민주화를 위한 전환점으로, 능동적이고 참여하는 대중을 요구합니다. 반면 우리의 수상은 “캔버라 버블 "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이기적 응석받이 같은" 지지단체를 통해 자신들의 가치를 표현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 이들을, “조용한 호주인", “조용한 주주"라며 모범적 시민으로 칭송합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중립적 입장을 주장하는 이는 당연히 정치적으로 급진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건 바로 모범 시민이란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고, 비판적이지 않고, 억제되고, 관성적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우리가 가능케 하는 것들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정치가들은 공익을 위한 작업을 하는 우리의 능력을 깎아내리고, 우리의 전문성을 공격하고, 우리의 성취를 조롱합니다.
정치가들에 대한 신뢰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위태로울 지경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것은 놀랍지 않고, 호주의 미래에서 무엇이 위기인지를 연구한 그라탄 연구소, 입소스(Ipsos), 호주 민주주의 박물관의 연구결과와 심지어 국가됨, 국가 정체성, 민주주의에 대한 의회 질의 등이 모두 그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치가와 의회는 우리 시대의 가장 긴급한 질문들에 최전선에서 맞서고 있는 예술가, 디자이너, 학자들을 느릿느릿 뒤따라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겐 단호함과 절박함을 가지고 함께 일해나가는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 도시계획 설계자, 학자, 과학자, 그리고 정책입안자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겐 이 절박함의 뼈대가 될 역사와 미래에 대한 이해를 제공해 줄 창의적 교육이 필요하죠. 분야를 가로지르는 바우하우스의 작업의 뼈대가 된 정치적 양심과 같이, 우리에게는 확신에 찬 미래를 만들기 위한 지략을 갖춘 탄력있는 창작자의 세대를 육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즉각적인 공동체를 넘어서서 관계를 맺고, 그 관계맺음을 공유된 윤리이자 일상의 실천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캔버라 버블 :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서 벌어지는 연방 정치가 현실과 국민으로부터 괴리되어 있다는 비아냥 조의 유행어 (역자 주)
윤리이자 실천으로서의 관계 맺음을 어떻게 우리의 연구와 가르침에 가져올 수 있을까?
때로는 상황이 가장 극복 불가능해 보일 때, 우리는 우리 삶을 급격히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뭔가 정말 큰 걸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정작 가장 심오한 변화는 가장 작은 데서 일어납니다. 숨쉬기. 잘 먹기, 운동하기. 성찰하기. 서로에게 이야기하기. 집중력과 탄력성을 주는 일상의 건강한 실천. 자신의 윤리를 비평하고 자신의 실천을 점검하기.
우선은 자기자신과 관계 맺고, 그 다음에 세상과 관계를 맺으세요. 다른 사람들을 돕기에 앞서 자기 산소 마스크를 쓰세요.
학생들에게 세상과 의미있게 관계 맺는 데 필요한 전문적 실천 도구를 주세요. 학생들이 졸업할 때 예술가와 디자이너가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작업의 성패를 좌우할 산업의 지형에서 길을 찾아갈 줄 아는 노동자이자 시민이 되도록 만들어 주세요.
여러분의 생각과 작업에 문화예술기관, 공동체 조직, 조합, 노동자, 미디어, 싱크탱크, 산업체, 그 외에 다른 시민적 행위자들을 포함시키세요. 방에 있지 않은 목소리들을 환영하세요. 우선은 호주 원주민(First Nations)부터요.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 자신과 다른 문화와 젠더를 가진 사람들, 지방 출신의 사람들과, 이를테면 호주연구위원회의 링키지(ARC Linkage) 프로젝트 같은 국가적 규모의 것보다 훨씬 더 작은 방식으로 관계 맺을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일상의 미디어 참여를 연구 실천의 일부로 삼으면서, 여러분의 작업과 뉴스거리가 되는 것 사이의 관계 혹은 불화를 분명히 표현해 보세요. 실용적인 미디어 리터러시를 당신의 가르침의 일부로 통합해 보세요. 대학의 일상적 실천의 일부로서 여러분의 미디어 소비와 정치적 참여를 분류하고 보고해 보세요. 저희는 정치적으로 중립적 입장이라는 것의 불가능성을 분명히 말할 줄 알아야, 그것이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사용될 때 논박할 준비가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학생들과 동료들을 본인들 작업의 시민적 측면으로 능동적으로 향하게 하세요. 여러 담론을 가로질러, 다양한 방식으로 비판성을 길세요. 예술가와 디자이너는 공적인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미래의 대중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그들이 어떤 고유한 역할을 하는지 를 의식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있는 바로 그 자리로부터 이끄세요. 그렇게 함으로써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를 가르치지만, 동시에 미래의 시민을 기르게 됩니다. 예술과 디자인을 연구하지만, 동시에 미래의 민주주의를 육성하고 있는 거죠.
실패한다면 무엇이 위태로워질까요?
정치가들이 시민을 존중하지 않고, 긴급한 사안들에 대해 거듭해서 실패하며,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우리의 신뢰를 잃을 때, 그냥 딱 신경 끄고 싶은 심정이라는 거 이해합니다. 과소평가 당한다는 기분은 서로에게서, 동료와 공동체, 그리고 시민 영역 전체에서 후퇴해 버리고 싶게 만들죠.
그렇지만 우리가 관계 맺음으로부터 철수해 버리면--즉, 더 이상 듣지 않고, 답하지 않고, 참여하지 않으면--우리는 우리가 가장 불신하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줘 버리고 맙니다. 철수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우리가 만약 바우하우스를 창조했고, 그 다음에 붕괴시켜 버린 조건들에 대해 돌이켜 보고, 그걸 오늘날과 비교해 본다면 -- 민족주의, 쇼비니즘, 백인우월주의 (“부정적") 국제주의에 대한 거부, 지식인과 창작자에 대한 거부 -- 우리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걸 순식간에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즉각적 공동체를 넘어서 서로와, 그리고 우리의 미래의 형태를 결정 짓는 정치적 결정과 풍성하고 유의미하고 진행 중인 관계를 맺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들을 하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우리의 용기를 강화시켜 주니까요. 디자인은 모험적인 사고방식을 자극하니까요. 예술가들은 무엇이 가능지를 규정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거역합니다. 예술과 디자인은 우리를 우리의 정체성과 사회, 민주주의와 정치,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와 다시 관계 맺게 해 줍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이건 정치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쓸지는 온전히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에스더 아나톨리티스(Esther Anatolitis)
에스더 아나톨리티스는 호주의 국립시각예술협회(NAVA;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Visual Arts)의 상임이사로[1], 현대예술부문의 공정하고도 야심찬 정책과 지지, 행동을 주도한다. 에스더의 작업은 호주 내에서 가장 주도적인 예술 지지자 중 한 명으로서 현대 예술 관련 사안에 대한 지역, 지방, 국가, 그리고 세계적 시각을 조성한다.
그녀의 실천은 실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촉진해 주는 협업과 프로젝트, 업무 현장을 만들기 위해 전문적, 예술적 작업 방식을 철저히 통합한다. 시각예술, 디자인, 건축, 미디어 분야의 강력한 배경을 바탕으로, 에스더는 크래프트 빅토리아, 멜버른 프린지, SBS, 익스프레스 미디어, 신진작가 페스티벌과 지방예술 빅토리아(Regional Arts Victoria) 등의 다양한 곳에서 리더의 역할을 해왔다.
에스더는 Contemporary Arts Precincts 의 부회장이며, 수많은 이사회에서 일했고, 정책, 자문, 심사위원 역할 등을 역임했다. 에서더는 건축+철학(Architecture+Philosophy), 디지털 퍼블릭스, 인디펜던트 컨버전스의 전 큐레이터였으며, RMIT 건축의 스튜디오 프로그램에서 가르쳤고, 호주 곳곳의 대학에서 특별강연을 했다. 작가이자 비평가로서 에스더의 작업은 그녀의 홈페이지에 발행되고 수집된다.